요즘의 도서관에서는 더 이상 책 중심이 아니다. “책은 거의 곁길로 밀려난 것 같아요.” 자원봉사자 엘리 워터만(Elly Waterman)은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월요일 오후, 네덜란드 보에르던(Woerden)의 도서관은 북적북적하다. 많은 이용자들에게 이곳은 디지털 ‘기초 기술’에 대한 도움을 받는 장소가 되고 있다.
도서관은 사회에서 디지털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하나의 안전망이자 생명선 역할을 한다. 은행들은 점점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얼마 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주의 작은 도시에서는 또 하나의 은행 지점이 영구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번에는 지역 ABN 암로(ABN Amro)였다. 도서관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 더 많은 취약 계층의 지역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러 이곳을 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차와 커피가 실린 이동식 카트 옆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중에는 롭 립스(Rob Lips)도 있다. 그는 직업적으로는 프로그래머였으며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고, 그 일과 함께 도서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방금 휴가에서 돌아온 한 여성을 돕고 있다. 그녀는 아침에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지만 시차로 인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곧바로 도서관으로 왔다. 그녀의 DigiD(네덜란드 디지털 신원 인증 시스템)를 활성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 편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든요.”
그녀는 그녀가 가진 모든 메모를 탁자 위에 펼쳐 놓지만, 정작 사용자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대문자랑 소문자가 섞여 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설명한다. 롭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럴 수 있어요. 대문자와 소문자가 섞이면 종종 문제가 생기죠.” 그는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덧붙인다. “그럼, 다시 새로운 DigiD를 신청해 봅시다.”
도서관에서는 ‘DigiD 강좌’가 열리고 있으며, 곧 ‘스마트폰 강좌’도 시작될 예정이다. 컴퓨터 초보자, 특히 80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특별 강좌도 마련되어 있다. 내부적으로 ‘클릭 앤 틱(klik en tik)’이라고 불리는 이 강좌에서는 가장 먼저 컴퓨터를 켜고 끄는 방법부터 배우게 된다.
롭은 말한다. “자주 보이는 경우 중 하나가, 세상을 떠난 배우자가 모든 디지털 업무를 처리했던 사람들입니다.”
89세의 한 노부인은 태블릿으로 개인 지도를 받고 있다. 오늘은 아홉 번째 수업으로, 다행히 왓츠앱 사용은 능숙해졌다. 아마도 열 번째 수업에서는 구글 검색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너무 바쁘게 배우느라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시간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 역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마리안네가 그녀의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에 들어선다. 그녀는 지역 신문인 ‘헷 수퍼르뒤(het sufferdje)’에서 도서관에서 디지털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 시간을 운영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 컴퓨터는 완전히 엉망이에요.” 그녀가 하소연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컴퓨터에 제대로 로그인하는 것, 그리고 바탕화면에 아이콘들이 잘 보이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노트북을 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끄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냥 세게 한 대 치면 꺼지긴 하지만요.” 그녀는 반쯤 농담처럼 말한다.
“저도 항상 먼저 다 틀려보고 나서야 제대로 하게 돼요.” 엘리는 그녀를 다독이며 미소를 짓는다. 마리안네는 아름다운 노트와 부드러운 펜을 꺼내 열심히 필기를 한다. 전원 켜기와 끄기, 아이콘 정리, 폴더 만들기—어느새 그녀는 하나씩 해내고 있다. “한동안 겁먹고 망설이기만 했어요. 그런데 결국엔 계속 해보는 게 답이네요!” 그녀는 스스로 놀란 듯 웃으며 말한다.
DigiD, 노트북, 태블릿 사용을 돕는 것은 이제 현대 도서관의 핵심 업무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보조금도 지원된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분들은 상담 중간중간에 끼어들듯 찾아오곤 해요.” 디지털 기초 기술 상담사인 리자 라 포르타(Liza la Porta)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도서관이 은행 업무까지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은행은 자체적인 책임을 지는 상업 기관이에요. 도서관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 물론, 은행들도 취약 계층 고객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bankinformatiepunt.nl이나 toegankelijkbankieren.nl 같은 웹사이트에는 다양한 도움말과 정보가 가득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런 정보를 이용하려면 우선 인터넷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다.
“은행들이 공동으로 버스를 운영하면 어떨까요? 모든 은행 업무를 아는 직원이 탑승해서 고객을 도와주는 거죠.” 롭은 그렇게 상상해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남은 마지막 도움의 손길은 도서관이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이것이 도서관의 역할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도서관마저 손을 놓아버린다면, 이들을 도와줄 곳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엘리는 49세의 한 여성을 돕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재정을 관리해주고 있지만, ‘티키(Tikkie)’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휴대폰에 은행 앱을 설치해 직접 티키를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은행 업무를 돕는 일에는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엘리는 눈을 가리듯 손으로 시야를 차단하며 말한다. “은행 업무는 민감한 부분이라, 개인 정보를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대신 그녀는 직접 해결해주는 대신,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방식으로 돕는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죠.”
은행 앱은 다섯 자리 숫자 코드로 작동한다. “핀 코드보다 한 자리 더 길어요.” 엘리는 그렇게 설명한다. 여성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숫자를 세어 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녀는 즉석에서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입력하고, 엘리와 함께 앱을 테스트해 본다.
그런데 막상 사용하려고 하니, 그녀는 방금 만든 코드를 이미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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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은행 업무, 공공 서비스, 일상적인 소통까지도 이제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노령층은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관이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네덜란드 보에르던의 도서관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80세 이상의 노인을 위한 컴퓨터 기초 강좌, DigiD 로그인 교육, 스마트폰 활용법 안내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서관은 원칙적으로 금융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없지만, 인터넷 뱅킹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사실상 마지막 구조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부와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도서관이 체계적인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고, 자원봉사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요구된다. 둘째, 은행과 기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이동 상담 버스 같은 아이디어가 현실화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기술 교육이 아닌 사람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도서관은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단순한 기술 습득의 교실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와 따뜻한 조언 속에서 사회적 교류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출처 : www.volkskrant.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