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멘츠-레싱(Kamenz-Lessing)도서관 : 도시의 거실

카멘츠(Kamenz)에서는 대도시 외 지역에서도 도서관이 얼마나 현대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볼프강 멜처(Wolfgang Melzer)와의 연락은 ‘옛날식 도서관’에서 이뤄졌다. 카멘츠 시립도서관 후원회 회장인 그는 500킬로미터 떨어진 서쪽 도시 데트몰트(Detmold)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현재 리피 주립도서관(Lippische Landesbibliothek)에서 극작가 크리스티안 디트리히 그라베(Christian Dietrich Grabbe)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 한 편을 집필할 계획이다. 이 도서관의 열람실에서는 엄격한 학술 연구가 이뤄지며, 정숙이 최우선 수칙이다. 그래서 멜처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의 고향인 카멘츠(Kamenz)의 도서관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이 도서관은 이곳 출신의 또 다른 시인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멜처는 20여 명의 후원회 회원들과 함께 도서관의 운영과 복지를 돌보고 있다. 이곳에는 침묵이 최우선 규칙인 공간이 없다. 멜처는 예를 들어 로비의 소파에 편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옆 별실에서 게임 콘솔을 하며 떠드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리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책상과 의자가 놓인 공간에서 전화를 할 수도 있다. 다만 그곳에선 학생들이 발표 주제를 토론하거나 디지털 칠판 앞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학을 앞둔 이 날은 발표를 준비하는 학생도 없다. 대신 한 김나지움 학생이 피아노로 「작은 오리들(Alle meine Entchen)」을 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행위는 사서의 질책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멘츠 도서관 관장 마리온 쿠터(Marion Kutter)는 오히려 그 악기가 사용되는 것에 기뻐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우리 도서관의 큰 장점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물론 그녀는 도서관이 떠들썩한 공간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하지만, 대화를 나누는 것까지는 환영한다. 독서 중 이런 분위기가 거슬리는 사람은 더 조용한 독립 공간인 ‘독서 섬’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녀는 도서관을 집에 비유한다면, 그 공간은 서재라기보다는 “우리 도서관은 이 도시의 거실이 되고자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어린이 자료실 천장 위에는 해 모양의 조명 설치물이 빛나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 하셀바흐 카멘츠(Studio Hasselbach Kamenz)

도서관은 크게 변모해왔다. 1770년 5월, 카멘츠 도서관의 이름을 딴 레싱(Lessing)이 볼펜뷔텔(Wolfenbüttel)에서 사서로 일하게 되었을 당시, 도서관은 대체로 과학의 요새이자 귀족 창립자의 부를 보여주는 증표처럼 기능하는 엘리트 중심의 공간이었다. 카멘츠 도서관도 원래는 라이체움(Lyzeum,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만 개방된 시설이었다. 이후 도서관은 점차 일반 시민에게도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여전히 좁게 한정되어 있었다. 도서관은 책을 수집하고, 그것을 일정 기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마리온 쿠터(Kutter) 관장은 말한다. “공공 도서관이 단순한 대출 장소였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공공 도서관의 미래 방향은 이번 주 브레멘(Bremen)에서 열린 독일도서관총회(Deutscher Bibliothekskongress)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이 회의는 금요일에 막을 내렸으며, 약 3,000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도서관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논의했다. 도서관은 점점 더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이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공공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3D 프린터나 음향 스튜디오가 있는 제작 공간을 이용할 수 있고, 책뿐만 아니라 전동 드릴 같은 공구도 대여할 수 있는 곳이 되고 있다. 헬싱키의 오오디 중앙도서관(Oodi-Zentralbücherei)처럼 선도적인 시설에서는 책이 오히려 시야에 잘 띄지 않거나,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도서관의 모습을 경험하기 위해 굳이 헬싱키까지 갈 필요는 없다. 마리온 쿠터(Marion Kutter)는 휴가 중에 드레스덴(Dresden), 포츠담(Potsdam), 츠비카우(Zwickau), 프라이베르크(Freiberg)의 도서관들을 둘러보며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들을 모았다. 당시 그녀가 운영하던 카멘츠 도서관은 레싱(Lessing)의 생가 건물에 있었고, 일부는 시인의 박물관 위층에, 어린이실은 창문도 없는 옛 석탄 저장실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그건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었죠”라고 쿠터는 회상한다. 운영도 어려웠고, 350제곱미터의 사용 면적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뒤 바우첸(Bautzen) 카운티는 카멘츠에 위치한 김나지움의 증축 건물을 지었고, 시의 요청에 따라 그 위에 한 층을 더 얹었다. 이 층에 도서관이 새롭게 자리 잡았고, 면적도 900제곱미터로 확대되었다. 쿠터가 휴가 중 수집한 아이디어들을 반영해 카멘츠의 건축사무소 PDW 아르히텍텐(PDW Architekten)은 새로운 시립도서관을 설계했으며, 이 공간은 이제 다른 도서관 전문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개관 직후, 이 도서관은 2023년 작센 도서관상(Sächsischer Bibliothekspreis)을 수상했다. 바르바라 클렙슈(Barbara Klepsch) 작센 문화부 장관은 “이 도서관은 전문적인 도서관 운영과 혁신 역량이 결합되어, 카멘츠에 있어 모범적인 체류·행사·문화 공간이 탄생했음을 보여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미 로비부터 방문객을 환영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곳에서는 처음엔 책이 보이지 않는데, 다만 한 설치물 안에 들어 있다. 그 설치물은 해변용 의자와 에어매트리스로 꾸며져 여름철 학생 독서 경진대회를 홍보한다. 책 대신 안락의자와 커피 자판기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 구성은 체류 가치를 높여주죠,”라고 마리온 쿠터(Marion Kutter) 관장은 말한다. “그리고 약간의 수입도 생깁니다.”

오른편으로는 더 이상 옛날 지하실 같지 않은 어린이 공간이 펼쳐진다. 큰 창이 있어 채광이 좋고, 천장에는 해 모양의 조명 설치물이 달려 있다. 책장은 허리 높이로 설계되어 있어 “아주 어린 아이들도 책에 닿을 수 있다.” 방향 안내를 위해 세 개의 눈을 가진 마스코트 ‘레제몬스터(Lesemonster, 읽는 괴물)’가 있으며, 공갈 젖꼭지나 왕관 같은 장식으로 책의 대상 독자나 장르를 암시한다.

가장 어린 이용자를 위한 배려는 도서 대출 시스템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용자들은 단말기에서 책을 스스로 스캔해 직접 대출 처리를 할 수 있다. 책상 높이는 버튼 하나로 조절할 수 있어서 “세 살 아이도 픽시북(Pixie, 유아용 소형책)을 스스로 빌릴 수 있다.” 이 단말기는 이용자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주며, 관장에게는 소도시 도서관의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쿠터가 운영하는 카멘츠 도서관에는 정규직 4명 분량의 인력이 있다. 이 인력은 4명의 사서와 한 명의 관리인이 나눠 맡으며,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들은 매년 최대 5,000권의 새로운 책과 매체를 수집하고, 비인기 자료도 그만큼 폐기하며, 연간 150회 이상의 행사를 주관한다. 쿠터는 자신의 연수 시절과는 직무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여전히 좋은 범죄소설을 추천해주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에 불과해요.”

게다가 어떤 시간에는 책 추천조차 할 수 없다. 현대식 출입 시스템과 단말기를 통해, 직원이 없는 시간에도 도서관은 개방된다. 평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초반에 시의회는 ‘오픈 라이브러리(Open Library)’ 시스템이 과연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쿠터는 안심시킬 수 있다. “전혀 손상된 게 없었어요.” 오히려 이 같은 확대된 운영 시간 덕분에 이용자 수는 연간 12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인구 1만 7,000명의 도시에서는 인상적인 수치다. 쿠터는 방문객의 절반이 30세 이하라고 강조한다.

이런 수치는 독서가 사라지고 있는 문화가 아님을 보여준다. 카멘츠 도서관 후원회장 볼프강 멜처(Wolfgang Melzer)는 “우리는 젊은 세대를 독서와 연결된 상태로 유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젊은 층이 무엇을 읽는지를 보고 놀랄 때도 있다고 한다. 자신과 후원회 회원들이 높이 평가하는 에르빈 슈트리트마트(Erwin Strittmatter)의 책은 더 이상 대출되지 않아 서가에서 사라지는 반면, 최근 베스트셀러들은 꾸준히 읽히고 있다. 그는 이들의 문학적 가치가 잘 와닿지 않는다며 “한번 작가를 초청해서, 그런 책의 비밀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런 시도는 카멘츠에서도 흥미를 끌 만하다. 후원회는 매년 두 차례 ‘말과 화이트와인(Worte und Weißwein)’이라는 이름으로 70\~100명의 청중 앞에서 학자들과의 토론을 열고 있다.

멜처와 쿠터는 도서관이 앞으로도 공적 토론의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이제 카멘츠 도서관에서도 책, 영화, CD 외에 더 많은 것을 대출할 수 있다. ‘사물의 도서관(Bibliothek der Dinge)’에서는 예를 들어 빔프로젝터와 스크린, 카라오케 장비 등을 대여할 수 있다.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도서관의 DNA죠,”라고 쿠터는 말하며, 다만 “문학, 언어, 지식 생산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은 강조한다. “화물 자전거는 도입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어린이를 위한 학습용 컴퓨터와 로봇은 이미 갖추고 있다.

로봇은 또한 그녀가 구상하는 현대 도서관 계획에서 유일하게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이기도 하다. 쿠터는 요즘 로봇은 독자에게 책 위치를 안내하고 추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그 ‘직원’을 카멘츠의 레싱 도서관에 들일 수 있는 예산이 생기길 그녀는 바라고 있다. 이 도서관은 전통적인 방식의 도서관과는 거리가 먼,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출처 : www.nd-aktuell.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