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크만 비에르비카 도서관(Deichman Bjørvika)은 오슬로의 중심 도서관으로,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Oslo Opera House)와 뭉크 미술관(Munch Museum) 옆의 눈에 띄는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많은 도심 도서관들이 고전주의적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오슬로의 이 도서관은 강렬한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을 보여준다. 비대칭적인 배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직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슬래브가 만드는 브루탈리즘적 기념비성과, 자연광과 높이 솟은 중앙 아트리움이 만들어내는 개방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장서 규모는 45만 권이 넘으며, 오래전에 재제본된 구서들이 풍부하게 갖춰져 있어 수년간 대출되지 않았을 법한 책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도서관은 책을 둘러보기에 매우 적합하다. 대부분의 도서와 개인 열람 공간은 중앙을 관통해 올라가는 세 개의 다층 기둥을 중심으로 배치돼 있으며, 이를 통해 기능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오슬로 피오르드(Oslo Fjord)를 향한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했다.
디자인과 장서의 질을 넘어, 다이크만 비에르비카 도서관이 미국의 도심 도서관들과 다른 점은 노숙인의 거의 완전한 부재다. 기자는 중형 도시와 대도시를 포함해 미국의 도심 도서관 수십 곳을 방문했지만, 낮 시간대 노숙인 쉼터 역할을 겸하지 않는 도서관을 본 적이 없다. 쉼터는 낮 동안 숙소 공간을 비워야 하며, 이용자들은 갈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업이 없기 때문에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이 낮 시간대 노숙인 쉼터로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미국인은 곧바로 ‘포용성’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몰리기 쉽다. 그러나 오슬로 공공도서관은 기자가 아는 어떤 미국 도심 도서관보다도 더 포용적이다. 오전 8시 개관부터 밤 10시 폐관까지, 대학생들(노르웨이 출신 학생들과 히잡을 쓴 젊은 여성들 모두), 학생 단체, 어린 자녀를 동반한 부모, 체스 동호인, 은퇴자, 전문직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간을 이용한다. 반면 미국의 전형적인 도심 도서관 이용자 구성은 해당 지역 사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노숙인이 공간을 장악하면 지역 주민들은 발길을 끊는 경향이 나타난다.
데이크만 비에르비카 도서관에 노숙인이 거의 없는 현상은 오슬로 전반의 상황을 반영한다. 오슬로에는 안전한 약물 복용 시설이 존재하지만, 도심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운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이 시설에서 발생하는 무질서는 도서관까지 확산되지 않으며, 도서관은 그곳에서 도보로 약 15분 떨어져 있다.
유럽 도시들에서 거리 노숙인이 적은 현상은 미국의 비판자들이 흔히 제기하는 문제의식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노숙을 주거 문제로만 보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거 위기를 겪는 유럽 도시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닮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강력한 사회복지가 노숙을 예방한다고 믿는 이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예로 들 수 있지만, 뉴욕시의 경험은 그러한 모델이 중동에 정치적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이전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것보다 높다. 노숙 문제가 정신건강 시스템의 실패라고 보는 시각은 유럽의 더 높은 정신과 병상 수를 근거로 들 수 있지만, 정신질환이 노숙의 원인이라는 전제에는 동의하면서도 시설 수용을 꺼리는 장애인 권리 옹호자들은 유럽의 지역사회 정신건강 체계가 더 잘 조직돼 있다고 반박할 수 있다.

미국은 도서관 운영에서의 광범위한 실패와, 도서관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도서관이 노숙인 쉼터를 겸하는 것이 전혀 문제없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도서관을 ‘제3의 공간’이나 ‘사회적 인프라’로 찬양하며 미국의 공공재 투자 부족을 한탄한다. 석유 부국인 노르웨이는 다이크만 비에르비카 도서관뿐 아니라 다른 분관들에서도 넉넉한 도서관 투자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출만으로 건강한 도서관 문화를 보장할 수는 없다. 뉴욕의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도서관(Stavros Niarchos Foundation Library)과 워싱턴 D.C.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기념 도서관(Martin Luther King Jr. Memorial Library)은 최근 새로운 투자를 받았지만, 여전히 노숙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공주택의 역사가 보여주듯, 콘크리트를 붓는 것만으로는 행동 규범을 확립할 수 없다.
포용성의 문제를 떠나, 노르웨이 역시 몰입형 독서의 쇠퇴에 대한 해법을 찾지는 못했다. 다이크만 비에르비카 도서관에는 젊은 이용자가 많지만, 대부분은 노트북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 기관의 성과는 문화적이라기보다 시민적·도시적 성격이 강하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하루 종일 수십 명의 낯선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비교적 조용한 질서 속에서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을 것이다. 오슬로의 도서관은 미국의 노숙인 쉼터형 도서관에서 흔히 느껴지는 무기력한 분위기와 달리, 벌집 같은 활기를 띤다. 미국에서 이와 비슷하게 매력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도서관 공간은 뉴욕 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의 로즈 메인 리딩 룸(Rose Main Reading Room) 정도다. 이 공간은 뉴욕 공공도서관이 다른 지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방식의 관리 전략을 통해 노숙인의 유입을 대체로 막아왔다.
도서관 이용은 대중교통 환경보다도 도시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반드시 이용하지만, 대개는 짧은 시간에 그친다. 반면 집에서 공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후 내내 공공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도서관 이용자는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해 강한 시민적 신뢰를 표시하는 셈이다. 이러한 경험이 미국에서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좋은 것을 함께 누리고 공유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21세기는 유럽이 세계 무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는 최초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을 ‘박물관’으로 치부하는 것은 오류다. 우리는 도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한, 유럽에 계속 주목하게 될 것이다.
출처 : www.city-journal.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