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청소년 도서를 두려워하는가?
2021년 이후 미국에서는 학교도서관에서 약 2만3000권의 도서가 금지됐다. 특히 성소수자와 인종차별 비판을 다룬 책들이 집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영상 분석이다.
최근 미국의 도서관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책들이 점점 더 많이 사라지고 있다. 2021년 이후로만 해도 약 2만3000권의 책이 학교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여기에는 청소년 소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만화, 그리고 고전 문학 작품까지 포함된다.
케이시 미핸(Kasey Meehan)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은 전례가 없다. 이런 규모의 일은 이전에는 없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지그너(David Signer)는 “이런 일이 하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왜 이 책들은 사라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
문제가 된 책 가운데 하나는 마이아 코바베(Maia Kobabe)의 그래픽 노블 「젠더 퀴어(Gender Queer)」다. 이 만화는 마이아 코바베가 논바이너리로 커밍아웃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책은 2021년 처음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캘리포니아주 헌팅턴비치(Huntington Beach) 시립도서관에서 한 방문객이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책은 청소년 코너에서 성인 코너로 옮겨졌다. 이후 몇 년 동안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현재 이 책은 50곳이 넘는 학군에서 금지돼 있다. 이유는 대부분 같다. 내용이 외설적이거나 지나치게 노골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단체가 ‘맘스 포 리버티(Moms for Liberty)’다. 이 단체는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케이시 미핸은 “많은 부분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에 시작됐다고 본다. 맘스 포 리버티 같은 단체들이 이 시기에 강한 목소리를 냈다. 팬데믹 이후에는 관심사가 옮겨갔다. 어떤 책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는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가 쟁점이 됐다”고 설명한다.
이 단체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공화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맘스 포 리버티는 수많은 책 금지 조치의 핵심 주체로 꼽힌다. 아이오와주에서는 ‘북 오브 북스(Book of Books)’라는 목록을 제작했다. 100쪽이 넘는 이 문서는 책 금지를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여러 책을 모아 내용에 따라 1점에서 5점까지 평가한다.
「젠더 퀴어」도 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 만화는 5점 만점에 4점을 받아 ‘성인용 콘텐츠’로 분류됐다. 이유는 다양하다. 문서에는 그 이유들이 상세히 나열돼 있다. 예를 들면 월경에 대한 묘사,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탐색하는 내용, 성별 규범, 동성 간의 사랑 등이 포함돼 있다.
맘스 포 리버티는 이런 내용들을 부적절하고 외설적인 것으로 본다. 또한 이 책이 성 정체성에 관한 이데올로기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데이비드 지그너는 “허구 문학이 이데올로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해라고 본다. 문학 작품은 선전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며, 그 해석은 독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책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 왔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금지’된 책은 1852년 출간된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이다. 이 책은 노예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남부 여러 주에서 금지됐다. 1959년에는 어린이책 「토끼들의 결혼식(The Rabbits’ Wedding)」이 앨라배마주 전역의 도서관에서 철거됐다.
이 책은 검은 토끼와 흰 토끼가 결혼하는 이야기다. 당시 앨라배마 당국은 이를 ‘인종 간 결합을 조장하는 메시지’로 판단했다. 이런 사례들은 오랫동안 지역적 사건에 그쳤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사회는 학교도서관에서의 책 금지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다.
1975년 뉴욕주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전국적 관심이 집중됐다. 학교 측은 ‘반미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11권의 책을 제거했다. 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냈고,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학교 당국이 정치적·도덕적 이유만으로 자의적으로 책을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다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에 이 판결은 명확한 판례로 남지 않았다.
오늘날 정치 단체와 개인들은 바로 이 모호함을 활용하고 있다. 2021년 이후 책 금지 건수는 급증했다. 케이시 미핸은 “어떤 경우에는 한 권, 어떤 경우에는 열 권, 또 어떤 경우에는 수백 권에 달하는 목록 전체가 대상이 됐다. 30년 경력의 사서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이런 금지 조치는 주로 카운티 단위에서 이뤄진다. 펜 아메리카(PEN America)는 책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거나 부모의 허락이 필요해지는 순간, 그 책은 ‘금지된(banned)’ 것으로 정의한다. 케이시 미핸은 “일시적으로 제거된 경우든, 영구적으로 제거된 경우든 모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들이 주로 대상이 되는가. 성소수자 주제나 인종차별을 다룬 책들이 과도하게 많이 포함된다. 그러나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화씨 451(Fahrenheit 451)」,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 같은 고전 작품들도 많은 학교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책 금지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어린이책 「탱고는 셋이서 춤을 춰요(And Tango Makes Three)」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뉴욕의 한 동물원에서 두 마리 수컷 펭귄이 새끼 펭귄을 키운 실제 이야기를 다룬다. 2022년 9월, 전직 영어교사 비키 배것(Vicki Baggett)이 이 책을 문제 삼았다. 그는 플로리다주 한 학교에 공식 민원 양식을 제출하며, 이 책이 성소수자 의제를 추구하고 아이들을 세뇌한다고 주장했다.
이 민원은 에스캄비아 카운티(Escambia County) 학군위원회로 넘어갔다. 미국에서는 이런 스쿨 보드가 학교에서 어떤 책을 허용할지 결정한다. 공개 회의에서는 학부모, 교사, 주민들이 책 금지에 찬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경우 학군위원회는 해당 책을 관내 모든 학교도서관에서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에스캄비아 카운티의 최근 민원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비키 배것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022~2023학년도 플로리다주 전체 민원의 약 4분의 1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가 문제 삼은 많은 책들은 결국 도서관에서 제거됐다. 데이비드 지그너는 “지금의 흐름을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걱정 많은 한 명의 부모나 개인이 문제를 제기하면, 결국 도서관의 절반이 비워지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이 에스캄비아 카운티의 4만 명 학생들이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를 좌우할 수 있다. 플로리다주의 법 체계는 2022년 이후 이런 상황을 더 쉽게 만들었다. 아동에게 부적절할 수 있다는 의심만으로도 책은 도서관에서 제거돼야 한다.
케이시 미핸은 “처음에는 지역 차원의 움직임이었지만, 이제는 주 차원으로 확대돼 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법들은 공공 접근에서 책을 더 빠르게 제거하도록 설계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점이 있다. 펜 아메리카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에 발생한 책 금지의 97%는 학교도서관 자체에서 이뤄졌다. 법 위반을 우려한 나머지, 학교들이 선제적으로 책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지그너는 “대부분의 책은 국가가 금지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 출판사, 작가들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검열하면서 사라진다. 이것이 가장 위험하고,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이다. 바로 선제적 복종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는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데이비드 지그너는 “문학이나 영어 수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 수업에서도 교사들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트 슈피겔만(Art Spiegelman)의 「마우스(Maus)」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가장 중요한 그래픽 서사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슈피겔만은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동물 은유로 풀어낸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는 고양이로 그려진다. 이 책은 오랫동안 미국 학교의 필독서였다. 그러나 2022년 테네시주 맥민 카운티(McMinn County)에서는 학군위원회가 이 책이 8학년 학생들에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일부 폭력적인 장면과 나체 묘사였다. 그 결과 「마우스」는 교육과정에서 제외됐다.
데이비드 지그너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에서 문제 삼은 것이 나체라는 점은 정말 황당하다. 강제수용소 장면에서 나체 인물이 한 번 등장한다는 이유였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워싱턴주에서,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과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수업에서 빠졌다.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은 2023년 뉴저지주에서 폭력 묘사가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제거됐다.
책 금지 확산에는 개인이나 지역 단체뿐 아니라 정부도 점점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 2025년 이후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여러 행정명령을 발효했다. 이 명령들은 직접적으로 책 금지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부모 권한을 확대하고 자기검열을 부추긴다. 해당 행정명령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학교에서 일정한 ‘세뇌’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중단하기 위해 연방 지원금을 삭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성별이나 평등 관련 주제와 연관된 경우가 문제로 지목된다.
미국의 도서 검열은 2025년에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수많은 책 금지는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가 검열로부터 보호하는 미국 헌법 수정 제1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원칙이 미국 사회에서 거의 성역처럼 여겨져 왔다는 점에서, 현재의 상황은 더욱 역설적이다.
데이비드 지그너는 “이 책 금지에는 위선이 많다고 본다. 청소년 보호나 문학에 대한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매우 편협하고 협소한 시각이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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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ww.nzz.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