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서관의 분명한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
“(오늘날) 도서관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이제 의문이 되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열람실일 뿐인가. 첨단 교육 공간인가. 아니면 커피숍, 상담 센터, 우등생 프로그램 단과대학 같은 여러 캠퍼스 기능을 수용하는 물리적 기반 시설에 불과한가.”
한 역사학 교수가 남긴 이 관찰은 오늘날 대학도서관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도서관 건물을 지배한 인쇄본 서가는 대학도서관의 명확한 정체성을 드러냈다. 도서관은 학술 정보로 이어지는 필수 통로였다. “학문의 신전”이나 “학자들의 놀이터” 같은 은유가 그 정체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로의 전환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학술 출판물 접근에 대한 도서관의 독점적 지위도 흔들렸다.
더 다양하지만 덜 분명한 정체성
이에 대응해 도서관은 제공 기능을 다변화했다. 도서관은 자신들의 가치를 협력자, 출판자, 연구 데이터 관리자,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옹호자, 학생 성공과 취업 가능성의 촉진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서관 건물에는 다른 캠퍼스 서비스 제공자들도 들어왔다. 기술은 책을 밀어냈다. 학습 공간은 대화가 가능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동시에 캠퍼스 안의 다른 공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장소가 되기도 했다.
대학 지도부, 교수, 학생, 심지어 도서관 직원조차 도서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전보다 확신하지 못한다. 도서관을 설명하는 은유도 한 목록에서 25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도서관의 기능은 이제 다른 부서의 기능과 겹친다. 도서관은 학문 단위가 아니라 행정·전문 서비스 조직으로 묶이기도 한다. 이 모든 변화는 도서관의 학술적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정체성의 흐림은 문제인가
분명한 정체성은 도서관에 중요하다. 정체성은 도서관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 왜 존재하는지 설명한다. 또 누가 도서관의 서비스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이 도서관의 제공 가치와 의미를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그러한 명확성이 없으면 기관 지도부, 의사결정자, 다른 이해관계자는 도서관을 간과할 수 있다. 학생과 교수는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다. 도서관은 가시성과 인정 수준이 낮아진다. 도서관의 기여는 과소평가된다. 자원 배분 경쟁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기관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높이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인식은 중요하다. 도서관 직원은 가능한 한 자신의 기관 정체성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필자는 대학도서관의 전략적 포지셔닝(strategic positioning)에 관한 책을 쓰면서, 도서관이 정체성 흐림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을 파악했다. 특히 도서관만의 고유한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1. 핵심 차별점을 강조하라
이 전략은 다른 모든 전략을 포괄한다. 도서관은 대학의 다른 조직과 자신을 구별하는 여러 요소를 말과 행동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존중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실천적 가치
- 모든 학문 분야의 연구와 학습에 필수적인 역할
- 고유한 기록물과 유산 컬렉션
- 캠퍼스 공동체와 소속감의 형성
- 오랜 지속성
- 신뢰받는 지위
처음 네 가지는 아래의 다른 전략에서도 다룬다. 그러나 오랜 지속성과 신뢰받는 지위는 도서관을 돋보이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도서관은 대학의 초기 역사부터 캠퍼스 안에서 확립되고 기대되며 쉽게 식별되는 존재였다. 도서관은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에서 먼저 자리 잡은 이점을 누렸다. 또 공동체의 인식 속에서 강한 연상을 구축했다.
신뢰는 중요한 자산이다. 대학 자체의 권위가 약해지는 시기에도 도서관은 신뢰를 유지해 왔다. 허위 정보, 오정보, 가짜 뉴스가 진실을 흐리는 시대에는 그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
2. 도서관의 가치를 홍보하라
도서관의 가치는 도서관 정체성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자원이기도 하다. 한 목록은 도서관의 가치를 “지적 자유, 지식재산권과 그 가치, 이용자 개인정보와 비밀 보호, 협력, 이용자 중심 서비스”로 요약한다. 이러한 가치는 도서관 이용자 집단과 잘 맞아떨어진다. 또 학문적 진실성, 객관적 진실, 사회정의, 오픈 스칼러십(open scholarship)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가치는 도서관을 헌신적인 캠퍼스 시민, 관대한 협력자, “대학 공동체성의 정수”로 규정한다. 도서관은 이를 통해 존중을 얻고 권위를 더한다. 이처럼 오래도록 유효한 가치가 기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도서관 정체성과 어떤 긍정적 관계를 맺는지 강조하는 일은 타당하다.
3. 학문과의 연결을 전면에 내세워라
학문은 대학 사명의 중심이다. 도서관과 학문의 관계는 디지털 시대에도 도서관 정체성과 깊이 얽혀 있다. 지금은 이 관계가 더 중요하다. 도서관의 학술적 역할은 기존의 접근과 보존 기능에 더해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출판까지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점은 도서관이 사색과 대화를 수용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또 도서관이 집단적 학문 활동을 촉진하는 방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보 리터러시가 지식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정보 리터러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복잡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동체를 길러낸다.
도서관은 모든 학문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가로지른다. 따라서 도서관의 학문적 연결성은 중요한 차별점이다. 특히 행정과 규정 준수에 초점을 맞춘 다른 조직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4. 캠퍼스 전체에 대한 중심성을 알려라
도서관은 대학 역사 속에서 확립된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이점을 가진다. 그것은 캠퍼스 중심성이다. 이 중심성은 도서관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대학에도 이익을 준다. 도서관은 캠퍼스 공동체의 장소를 제공한다. 도서관은 모든 학문 분야에 열려 있는 평등한 공간이다. 동시에 대학이 추구하는 소속감을 구현하는 제3의 장소(third place)이기도 하다.
도서관을 “대학의 심장”으로 보는 은유는 흔하다. 이는 도서관 정체성의 긍정적 요소다. 도서관은 학제적 허브다. 또 연결자, 협력자, 촉진자, 안내자다. 도서관은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을 모아 상호 이익을 만들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5. 이해관계자의 인식을 형성하라
물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이해관계자의 인식을 형성한다. 이를 통해 도서관의 정체성을 분명하고 독특하며 잘 이해되는 것으로 만든다. 도서관의 고유한 특성은 오랜 지속성과 신뢰받는 지위에서 오는 권위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도서관은 물리적·사회적 중심 위치에서 대학의 학문적 사명을 발전시켜야 한다.
분주한 캠퍼스 환경에서 이러한 특성을 자신 있게 드러내는 일은 지속적인 과제다. 공동체의 필요와 관심에 초점을 맞춘 능동적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또 도서관의 구체적 기여와 그 기여가 만들어내는 차이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학술 정보의 발견, 생산, 출판을 촉진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분명하고 잘 이해되는 정체성을 기르는 일은 가치가 있다. 이는 도서관이 많은 조직 속에서 돋보이도록 돕는다. 또 도서관의 위치와 전망을 높인다. 그 결과 인정, 이용, 자원 확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존 콕스(John Cox)는 2023년 말 골웨이 대학교(University of Galway) 대학도서관장직에서 은퇴했다. 현재 그는 대학도서관에 관해 글을 쓰고 분석한다. 그는 대학도서관의 전략적 포지셔닝: 세계적 과제, 지역 정치, 전략 개발(The Strategic Positioning of Academic Libraries: Global Challenges, Local Politics and Strategy Development)(패싯 퍼블리싱, Facet Publishing, 2026)의 저자다.
기사 분석
해당 기사는 대학도서관이 더 이상 인쇄자료의 보관소라는 단일 이미지로 설명되지 않는 현실을 다룬다. 디지털 정보가 확산되면서 도서관은 학술 정보 접근의 유일한 통로라는 지위를 잃었다. 대신 연구 데이터 관리, 오픈 스칼러십, 디지털 리터러시, 학생 성공 지원, 취업 역량 강화 같은 기능을 넓혔다. 문제는 기능이 늘어날수록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대학도서관을 설명하는 은유는 한 목록에서 25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는 도서관의 의미가 풍부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학 구성원이 도서관을 어떤 조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을 느낀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미국 대학·연구도서관협회(Association of College and Research Libraries, ACRL)의 2026년 고등교육 도서관 기준(Standards for Libraries in Higher Education)은 대학도서관의 공통 전문성을 정보 리터러시, 학술 커뮤니케이션, 장서, 발견 서비스의 네 영역으로 정리한다. 이 기준은 도서관 인력이 학생 학습, 교수 연구, 기관 효과성을 높이도록 기관 목표와 도서관 사명을 연결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출처: ACRL Standards for Libraries in Higher Education.
이 논의의 배경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자료 접근 방식이 바뀌었다. 인쇄본 서가가 도서관 건물의 상징이던 시기에는 이용자가 도서관을 학술 정보의 입구로 이해하기 쉬웠다. 그러나 전자저널, 데이터베이스, 검색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이용자는 도서관을 거치지 않고도 정보에 접근한다고 느낀다. 둘째, 캠퍼스 조직 간 기능이 겹친다. 도서관 안에 상담센터, 커피숍, 학생 성공센터, 기술 지원 공간이 들어오면 이용자는 편리함을 얻는다. 그러나 도서관이 학문 조직인지, 생활 편의 공간인지, 행정 서비스 거점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셋째, 대학도서관은 자원 배분 경쟁에 놓인다. 정체성이 흐리면 지도부는 도서관의 성과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 ACRL 기준은 대학도서관이 기관 효과성에 대한 기여를 문서화하고 증거 기반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정체성 논의가 홍보 문제가 아니라 예산, 평가, 인증, 전략 기획과 연결된 운영 문제임을 보여준다. 출처: ACRL Standards for Libraries in Higher Education.
개선 방향은 기능 확장이 아니라 차별점의 재정렬에서 출발해야 한다. 해당 기사는 도서관의 핵심 차별점으로 실천적 가치, 전 학문 분야에 대한 필수성, 고유 기록물과 유산 컬렉션, 공동체와 소속감 형성, 오랜 지속성, 신뢰받는 지위를 제시한다. 이 가운데 대학도서관이 특히 강조해야 할 축은 학문성, 신뢰성, 중심성이다. 학문성은 도서관이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식의 발견, 평가, 생산, 출판을 돕는 전문 조직임을 뜻한다. 신뢰성은 허위 정보와 오정보가 확산되는 환경에서 더 중요하다. ACRL의 정보 리터러시 프레임워크(Framework for Information Literacy for Higher Education)는 2015년에 제출되고 2016년에 채택되었으며, 학습자가 정보를 찾고 평가하며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고등교육의 핵심 역량으로 본다. 중심성은 건물의 위치만 뜻하지 않는다. 도서관은 학과, 연구자, 학생, 행정조직을 연결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library.re.kr에 소개된 네브래스카 대학교 커니 캠퍼스(University of Nebraska at Kearney)의 캘빈 T. 라이언 도서관(Calvin T. Ryan Library) 사례도 이 방향을 보여준다. 해당 사례는 2024년 완료된 2,500만 달러(약 330억 원) 규모의 리모델링을 통해 약 9,290제곱미터 규모의 도서관 안에 로퍼 성공 허브(Loper Success Hub), 학업 상담, 경력 개발, 장애 지원, 튜터링, 커뮤니케이션 학과 스튜디오 등을 통합했다. 출처: ACRL Framework for Information Literacy for Higher Education, 도서관디자인연구소.
시사점은 국내 대학도서관에도 직접 연결된다. 국내 대학도서관이 “열람실”, “복합문화공간”, “학습지원센터”라는 표현만 반복하면 정체성은 더 흐려질 수 있다. 따라서 대학도서관은 공간 개선보다 먼저 “학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 기반 지식 인프라”라는 문장을 중심 정체성으로 세울 필요가 있다. 이 정체성 아래에서 열람석, 협업실, 미디어 제작실, 데이터 관리 서비스, 정보 리터러시 교육, 연구성과 확산 지원을 배치해야 한다. 공간 디자인도 같은 기준을 따라야 한다. library.re.kr에 소개된 중국 45개 대학 대상 연구는 대학도서관 환경이 학생 상호작용과 학습 참여에 영향을 미친다고 제시한다. 또 대학도서관 실내 환경 품질 연구는 4개 연구 구역에서 404명의 이용자 응답을 분석했으며, 인테리어 디자인과 음향 품질 인식이 전반적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고 정리했다. 이는 도서관의 물리적 환경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학습 참여, 상호작용, 만족도를 매개하는 핵심 조건임을 보여준다. 다만 대학도서관이 공간만 강조하면 카페나 라운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학도서관은 공간을 학문적 행위와 연결해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용한 열람석”은 집중적 학습을 돕는 장치이고, “협업실”은 공동 지식 생산의 장치이며, “아카이브”는 대학의 기억과 연구 정체성을 보존하는 장치라고 말해야 한다. 출처: 도서관디자인연구소, 도서관디자인연구소.
관련 기사
- [미국] 미래형 대학 도서관의 진화: 네브래스카 대학교(UNK) 캘빈 T. 라이언 도서관 사례 분석
- 대학 도서관 환경이 학생의 상호작용과 대학생의 학습 참여에 미치는 영향
- [논문] 도서관 이용자의 실내 환경 품질 인식 조사: 대학 도서관에서의 SEM-Logit 분석 연구
- [독일] 현대 도서관: 다기능적이고 사회적인 공간
- 공공도서관의 공간기획을 위한 4 Spaces Model
- 2026 도서관 공간구성 트렌드: 해외 최신 사례로 본 공공도서관 공간 구성 경향
